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프치히 전투 (문단 편집) === 10월 18일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0px-Leipzig_Battle_2.svg.png]] 프랑스군의 보급이 신통치 못했다는 점도 이미 언급했다. 이 시점에서 연합군은 포위망을 거의 완성하고 있었고 프랑스군의 보급물자도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더 이상은 승산이 없다고 여기고 퇴각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프란츠 2세|프란츠 1세]][* 혹시라도 착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언급하자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는 [[프란츠 2세]]이고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로는 [[프란츠 1세]]다.]에게 친서를 보내 영토를 일부 할양하겠으니 [[휴전]]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그럴 이유가 없었던 두 사람 모두 제안을 거부했다. 프로이센군 9여단이 버려진 바하우를 점거하는 동안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을 뢰스니히에서 몰아내고 기병이 시간을 버는 사이 보병대가 될리츠를 점거했다. 청년 근위대가 오스트리아군을 될리츠에서 몰아냈으나 오스트리아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는 3개 [[척탄병]] 대대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라이프치히 턱밑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동쪽의 프로프스타이다에서는 일대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클라이 드톨리[* 독일계 러시아 제국의 육군 원수로 본명은 미하일 안드레아스 바클라이 드 톨리(Михаи́л Богда́нович Баркла́й-де-То́лли)이다.] 와 클라이스트의 러시아-프로이센 연합군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애초에 클라이스트와 드톨리는 해당 거점을 공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알렉산드르 1세]]의 강요로 마지못해 움직였다. 바클라이 드톨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차르]]의 간섭을 받았으니 얼마나 열이 뻗쳤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드톨리는 완전히 요새화된 프로프스타이다를 강습하기에 앞서 포격전을 벌였다. 전장의 화포 대부분은 연합군의 것이었지만, 상대는 자그마치 프랑스 근위 포병대였다. 프랑스 포병의 압도적 기량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드톨리는 공격을 명한다. 프로이센 10여단과 12여단이 [[경보병]]을 앞세우고 전진하여, 프로프스타이다 외곽을 점령하는 등 선전했지만, 프랑스 보병들의 반격에 마을 밖 개활지로 밀려난 상태에서 세계 최강 포병대의 집중 사격과 함께 프로스프타이다를 돌아 양쪽에서 튀어나온 뮈라의 흉갑기병에게 들이받혀 완벽히 박살나고 말았다. 러시아 후사르와 흉갑기병의 시기적절한 돌격이 이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프로이센 12여단은 다시금 전진했지만, 이번에는 마을에 접근해보지도 못한 채 포병 사격에 격퇴당했다. 2번의 돌격이 모두 돈좌된 프로이센군은 재보급을 위해 퇴각했다. 이어서 전진한 러시아 제2군단은, 군단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프랑스군의 총검돌격에 격퇴당한다. 마침내 보다못한 드톨리가 직접 4번째 강습을 이끌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소규모 프로이센군을 곁들인 4개 보병 사단을 다이렉트로 꽂아넣은 것으로 모자라, '보로디노의 영웅'이라 불린 레이프스키 예하 2개 척탄병 사단까지 동원하여 맹공을 펼쳤다. 포병 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격렬한 공격에 프랑스 수비군이 반대로 격퇴당하며 프로프스타이다의 운명도 경각에 달하는 듯 했으나, 황제가 직접 지휘한 제2선임 근위 사단 예하 1근위 여단의 중위 근위대가 러시아군을 도로 쫓아내며 4번째 돌격마저 돈좌시켰다. 슈바첸베르크는 차르에게 근위대를 투입하여 맞불을 놓을 것을 건의했지만, 거절당하면서 결국 오후 4시, 프로스프타이다에 대한 공격이 종료되었다. 이후 젊은 프랑스 병사들이 마을에서 튀어나왔지만, 동맹군의 사격에 빠르게 귀가하면서 프로스프타이다의 전투는 끝을 맺게 된다. 어둠이 내리자, 하루 종일 격전을 벌인 비알의 프랑스 6사단은 프로프스타이다를 버리고 퇴각했다. 플라토프 장군의 러시아군 중포병 부대는 파운스도르프 인근에서 작센군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랑제론은 모카우에서 부교를 띄워 파르테 강을 도강하여 북동쪽 방면에서 진군 중이던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 6만 5천 명과 합류했다. 오스트리아군과 러시아군은 파운스도르프를 공격하였으나 프랑스와 작센 포병대의 산탄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했다. 그러나 약간의 병력이 참전한 영국의 [[콩그리브 로켓]] 여단이 마을에 로켓을 갈겨대자 프랑스군과 작센군이 전열을 무너뜨리며 퇴각하게 되었다. 프로프스타이다 이상 가는 혈전은 쇠네펠트에서 벌어졌는데 시가지를 뺏고 뺏기며 건물 하나와 모퉁이 하나를 두고 박터지게 싸우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서로 미친 듯이 총화를 주고 받은 끝에 여기서는 랑제론의 러시아군이 우세를 점하며 끝내 목표를 달성했으나 시가지는 이미 불바다였다. 이 때까지도 베르나도트는 망설이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남들 다 피터지게 싸우는데 자기들만 아무 것도 안한다며 공격을 강변한 [[스웨덴]] [[장교]]들 등쌀에 밀려 결국 스웨덴 엽병들도 참전했다. 이들은 라이프치히에 직접 공격을 감행했는데 매우 잘 싸워서 전사자는 121명이 전부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